|
금남로 전남도청 집단발포
|
|
|
왜곡
5·18 최대 참극인 공수부대 집단 발포가 이뤄진 금남로
신군부와 극소수 극우인사들은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우발적인데다, 자위권 차원에서 일어났다고 강조한다. 즉 시위대가 장갑차와 차량을 이용해 공수부대 저지선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부대원들이 사망하고, 이에 위협을 느낀 공수부대원들이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전두환 씨 등 신군부는 시민들이 먼저 총을 쏘았기 때문에 자위적 차원에서 발포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
|
|
진실
5월 21일 공수부대원들의 학살만행에 항의하고 있는 시민들
5·18 발포 명령자 규명은 진실찾기의 핵심이다. 공수부대의 조직적 발포는 5월20일 광주역과 21일 오후 1시께 전남도청 일대로 크게 두 차례였다. 27일 [상무충정작전]은 발포가 내포된 명령이었다.
13:00 직전에 시위대에서 시위진압에 지원 나왔던 기갑학교 소속 장갑차 한대에 화염병을 던지자, 불이 붙은 이 장갑차는 뒤로 후진했다. 동시에 시위대 장갑차가 돌진했다. 저지선이 붕괴된 계엄군은 도청 분수대 뒤와 도로 주변으로 피신했으며, 그 과정에서 11공수여단 63대대 8지역대 소속 무전병 권용운 일병이 장갑차에 깔려 사망했다. 장갑차가 잠시 멈춘 다음 분수대를 돌아나갈 때 장갑차에 사격을 했고, 뒤따라오던 버스가 돌진하자 10여명의 공수부대원이 버스에 사격을 가해 운전사가 사망하면서 분수대를 들이받고 멈췄다. 이어 뒤따라오던 차량과 시위대가 도청 쪽으로 몰려들고,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분수대 앞에 공수부대원들의 집중사격이 이루어졌다. 시위대가 뒤로 피신하기 시작하였고, 공수부대원들은 도청 광장을 장악했다.
20일 밤 시위대는 광주역 일대에서 공수부대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일부 대대는 포위되기도 했다. 차량을 동원한 시위로 공수부대원 1명이 숨졌고( 16대대 정관철 중사), 대대장들은 발포를 요청했다. 이 때 최세창 여단장은 작전참모와 작전과 선임하사 지휘 하에 본부중대 병력을 동원, 각 대대에 M16 실탄 반출과 배부를 명령했다.
전남도청 집단 발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11공수여단에게 탄약이 어떻게 전달됐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20일 벌어진 3공수여단의 광주역 발포가 그 단초를 제공한다. 광주역 발포는 3공수 명령 계통에 따라 실탄이 배분됐고, 사격 지시도 지휘권자의 명령에 의해 체계적으로 진행됐다.
광주관광호텔 옥상에 4명이 1조가 되어 올라갔으며 사수의 지시에 따라 조준경이 달린총으로 주동자나 총기를 휴대한 시위대를 조준 사격했다.
jtbc 뉴스룸 팩트체크「5 ·18 광주민주화운동 가짜뉴스」
특전사령부 군 기록을 보면 한 일병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장비 명목이 기록돼있다. 당시 각 여단별로 M16 조준경이 지급됐는데, 3공수여단은 100정, 7공수여단 102정, 11공수여단 81정이 있었다. 또 특전사령부의 전투상보 내용 중 장비 손실 항목에서 M16 5정(7공수여단 2정, 11공수여단 3정)이 손실됐고, 또 11공수여단 장비 중 M16 조준경 9정이 손실된 것으로 기술돼 있다.
|
| 이전글 | 전두환의 광주 개입 |
|---|---|
| 다음글 | 초기 공수부대 강경진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