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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용성 지알원 채정완 오월은 푸르구나는 1980년 5월 이후 태어난 세대인 청년 작가들이 어떻게 5.18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며 살아가는지 질문하는 전시 프로젝트이다. 전시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가 기획하며, 미디어나 역사, 신화로만 5·18을 접하고 배워온 ‘포스트 메모리’ 세대의 작가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다양한 방식에 주목한다. 3인의 작가 각각은 사진과 회화, 스트리트아트 같은 평면 작업을 고집하며, 기나긴 민주화 투쟁을 거쳐 이룩한 경제 대국 한국 사회의 허울과 이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이들에게 평면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고 간과하는 ‘주변부’의 현실들을 부각하여, 과거에 대한 다양한 서사와 기억까지 포용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다. 또 참혹했던 과거의 폭력과 억압, 상실의 기억을 잊지 않고 – 타자들의 경험과 연계해- 과거의 기억에 더 큰 인간적인 시선을 부여하며, 상처의 치유와 공존까지 기원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꽉 채운 30개월을 저당 잡혔던 나의 군 생활 일기의 마지막 장은 “환멸과 치욕과 수치와 멍에의 날들이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깊은 상흔은 회한뿐’이라는 휘황스러운 수사로 장식된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다.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천일의 날 중에서도 1991년 5월에 대한 소리와 냄새와 촉각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너무나 선명하다.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 세 사람은 “보수대연합”이라는 미명하에 3당 합당을 선언했다. 당시 민주진영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김영삼은 군사정권 청산을 요구하던 민의를 뒤로하고 거대한 여당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노동운동, 통일운동,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도 점점 심해졌고, 1990년 11월에는 구속된 양심수가 1,259명에 달했다. 공안정국은 노태우 재임 기간 내내 지속되었고, 해가 바뀐 1991년 봄에만 분신 또는 의문사로 총 13명이 사망했으며, 2,361회의 집회가 있었다.
1989년 6월 입대를 했던 나는 전투경찰로 차출되었다. ‘빽도 없고, 운도 없는’ 놈들이라는 자조가 내가 속한 전경 부대에서는 스스럼없는 농담이었다. 특별한 기술도 남다른 체력도 없는 고만고만한 놈들을 모아 놓은 군인도 경찰도 아닌 신분으로 자긍심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집단이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내부적으로는 상하 계급 간의 구타가 일상이었고, 외부적으로는 폭력 경찰로서의 위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국가 공인 최말단 철부지 공권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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