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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18기념재단 SNS 서포터즈] 5·18민주화운동 헬기사격 명령은 누가 했을까?
글쓴이 : 5·18기념재단    작성일 : 2023-04-30     조회 : 238



"5·18민주화운동 헬기사격 명령은 누가 했을까?"

 

광주 공포정치가 있었던 그때, 그리고 현재 바뀐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두 가지로 구분되어 전해집니다. 발생한 사건은 하나지만, 정답은 두 개가 만들어졌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두환이 살아있을 때는 아무도 말을 하지 못 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고 공수부대 장교 및 몇몇 군인들이 증인으로 하나 둘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4월 20일 5·18 당시 투입됐던 전직 특전사 영관급 장교가 1980년 5월 20일에 있었던 진실을 밝혔습니다. 그는 시위 진압 과정 전후로 숨진 시민 10여 명을 부하들을 시켜 전남대학교와 광주교도소에 가매장했다고 공개석상에서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광주 시민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전남대학교 주변에서 시위하던 시민 150여 명을 붙잡아 군용 트럭 3대에 나눠 태우고 덮개를 씌웠다고 합니다. 광주교도소로 출발하기 전 우리 쪽 누군가 사람을 태운 밀폐된 차량 안에 최루탄을 터트렸으며, 광주교도소에 도착해 살펴보니 트럭 뒤에 타고 있던 시민 10여 명이 숨져있었다고 합니다.

 

 


 

정상적인 군인이라면, 현장에서 바로 내려서 확인하고 빠른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그대로 그들을 죽게 놔두었습니다. 충격적인 건 최루탄을 터트린 군인은 진급을 위해 시민들에게 그와 같은 짓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당시 전남대 인근에 회사 공장이 있었는지 여공들이 엄청 몰려왔다. 군인들 물러가라, 전두환 물러가라라고 데모를  했다고 합니다. 군인들이, 우리들이 몽둥이로 때리고 진압해서 몇 분이 돌아가셨다라며, 죽은 시신을 사병들이 내 앞으로 들고 왔길래 대학 건물 뒤편에 부하들을 시켜 묻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5·18이 완전히 진압된 이후 보안부대 요원이 찾아와 가매장지를 가르쳐 준 바 있다"라며 "그 뒤로 시신 행방은 모르겠다. 2년 전 쯤 교도소와 전남대를 다시 가서 살펴보니 전남대 가매장지엔 건물이 들어섰고, 교도소 쪽도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발대식 때, 광주 금남로에 위치한 전일빌딩245를 방문하여 헬기에서 쏜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헬기에서 쏜 흔적이 건물에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전일빌딩에서 사격이 있었다는 국과수 증거만 있을 뿐 누가 명령했는지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사격이 진행되었던 시점을 기준으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짧은 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군 정부가 소장하고 있는 5·18관련 기밀문서를 공개한 팀 셔록은 광주를 지난 4월 22일 방문하면서, 현재 미국이 대한민국에 취하고 있는 정책 기조가 43년 전 내용인 국방, 안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5·18기념재단에서는 가슴 아픈 역사를 알리기도 하지만, 슬픔을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광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5·18 헬기사격의 진실과 체험학습을 통해 광주의 멋과 역사를 100% 가슴에 담아 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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